‘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은 절반은 맞고 또 절반은 틀린 얘기다. 사실은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삶의 방식을 갖추기 위해서는 일단 생각부터 해야 한다. 남들 사는 대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방법을 보여주는 두 권의 용기 있는 책을 읽었다.
남과 조금 다른 인생을 사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모든 사람의 인생이 판에 박힌 듯 비슷할 때는 더욱 그렇다. 모난 돌이 정 맞는 사회일 때는 더더욱 그렇다. 초중고를 거쳐 대학을 마친 후, 번듯한 직장에 다니다가 서른 즈음에 결혼하고 아이를 둘쯤 낳아야 한다. 남자는 낮에 회사에 나가야 하고, 여자는 조신하게 살림을 해야 한다(하다못해 맞벌이도 얌전하게 해야 한다). 아이들은 학교에 열심히 다니며 부모님 말씀,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
웬만하면 아파트에 살아야 하고 아이들이 자라면 30평형대 이상은 필요하며 냉장고는 양문형, 세탁기는 드럼식, 김치냉장고와 평면 TV, 에어컨과 제습기도 갖춰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그런 삶이다. 그런 삶에 턱걸이로 겨우 매달려 있던 내가 처음 아파트를 버리고 변두리의 단독주택으로 이사한다고 했을 때 들었던 말과 보였던 표정들에서는 대충 이런 식의 메시지가 느껴졌다. ‘미쳤네, 미쳤어.’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결정한 건 그냥 이사가 아니었다. 아파트를 버린다는 것은 대도시의 평범한 중산층의 삶에서 비켜나간다는 것을 뜻했다.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막 아이들이 태어난 이때 좀 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를 사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게는 그런 삶이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아파트 평수를 늘려가고 남편을 닦달해 돈을 벌어오게 하고 애들을 학교로 학원으로 뺑뺑이를 돌리면서 나는 뱃살이 두둑하게 낀 아줌마가 될 거고 결국 바랄 수 있는 최고의 꿈이라고 해 봤자 연금으로 골프나 치러 다니는 거겠지? 물론, 그런 삶이 자신에게 맞는다면 그렇게 사는 게 옳다. 그런데 나에게는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강단 있는 여자가 아니어서 내가 원하는 작은 것들을 하나씩 실천해 나가는 데도 엄청난 용기들을 모아야 했다. 막상 이사를 결정해 놓고는 범죄나 화재 등의 온갖 시나리오를 써가며 몇 달간 잠도 못 이루며 고민했다.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단독주택에서 살아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읽었는데, 이사하고 몇 년이 지나도록 단 한 번도 창문을 연 적이 없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 역시 그렇게 될까 걱정이었다.
늦가을에 이사하고 첫 겨울이 지났다. 그해 겨울은 정말이지 혹독했다. 집은 말도 못하게 추웠다. 아파트에서처럼 한겨울에도 반소매 티셔츠에 맨발로 홑이불 한 장 덮고 생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옷을 몇 겹씩 껴입고 두툼한 이불까지 새로 장만했다. 아이들은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에 실려갈 정도로 심한 감기에 걸렸다. 그렇게 추웠던 겨울이 지나고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봄이 도착했다. 봄이 그렇게나 감동적이었던 적도 없었다. 손바닥만 한 마당 위에 햇살이 금빛 자리처럼 깔리고 골목의 앙상한 나무마다 잎이 돋고 꽃이 피고 새가 지저귀었다. 우리는 겨우내 그리워했던 햇볕을 쬐며 나비와 벌이 날아드는 마당에서 오랫동안 시간을 보냈다.
과연 이런 행복을, 아파트에 살면서 누려본 적이 있었던가. 그렇게 나는 전과는 조금 다른 인생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물론 도시를 버리고 시골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사람들, 세계 일주를 떠나는 사람들, 삶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는 사람들에 비하면 나의 작은 도전은 정말로 별 볼 일 없는 것이다. 어디다 대고 자랑하기도 머쓱한 일이다. 그럼에도 나처럼 소심한 사람에게는 크나큰 도전이었음이 분명했다. 그 과정에서 어찌나 마음이 부대꼈는지 수많은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그중 내가 특별히 사랑하는 두 권의 책을 소개하려 한다.
첫 번째 책은 일본 OL(Office Lady, 사무직 여성들을 일컫는 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만화가 마스다 미리ますだミリ의 [주말엔 숲으로]이다. 주인공인 하야카와, 마유미, 세스코는 도쿄에 사는 세 명의 여자친구들이다. 어느 날 하야카와는 ‘그래, 시골에서 살자!’라고 결심하고는 여행이라도 떠나듯 가볍게 시골로 내려가 버린다.
보통 젊은 여자가 시골에서 살겠다고 하면 대단한 결심이 필요할 것 같지만, 하야카와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냥 한번 해보지 뭐.’ 이런 식의 마인드를 가진 이 유연한 여자는 시골에 산다고 농사를 짓는다거나 슬로우 라이프를 추구하지도 않는다. 택배로 채소를 배달해 먹고, 친구들이 도쿄에서 사온 맛있는 음식을 반가워한다.
친구들은 종종 놀러 와서 함께 숲을 산책하고 카약을 탄다. 이 담백하고 깊이 있는 만화책에는 종종 마음에 새겨둘 만한 구절들이 등장하는데 이런 식이다. 숲을 산책하다 해가 지자 헤드램프를 켜고 걷던 하야카와는 세스코에게 말한다.
“헤드램프는 2~3미터 앞을 비추는 거야. 숲에는 돌이나 나무뿌리가 있어서 어두울 때는 발밑보다는 조금 더 멀리 보면서 가야 해.”
도쿄의 여행사에서 일하는 세스코는 무례한 손님들에 지쳐 일을 그만둘까 생각하던 중 숲에서 들은 하야카와의 말을 떠올린다.
“조금 더 해보고 정말로 싫어지면 그때 그만두면 돼. 부러지지 않도록 부드럽게. 어두운 곳에서는 바로 발밑보다 조금 더 멀리 보면서 가야 해.”
또 하야카와는 마유미에게 카약을 타는 방법을 가르쳐주며 이렇게 일러주기도 한다.
“손끝만 보지 말고 가고 싶은 곳을 보면서 저으면, 그곳에 다가갈 수 있어.”
“하야카와. 이 카약, 바다에서도 탈 수 있을까?”
“괜찮을 것 같긴 한데. 조금 더 긴 카약이 좋을 거야. 긴 게 똑바로 나가고 안정감이 있거든. 큰 바다에서 목적지를 향할 때는 똑바로 나가는 것이 빠를 테고. 강이나 호수에서는 작게 회전할 수 있는 것이 편리하고. 똑바로 나갈 것인지, 작게 회전하면서 빠져나갈 것인지, 상황에 맞는 것을 선택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그 말에 마유미는 ‘회사는 커다란 바다가 아니다. 바다보다 좁고 작은 곳이다. 게다가 바위도 있고 굴곡도 있다. 똑바로 나아갈 수 없는 곳을 직진용의 긴 배로 가려고 하면 언젠가 고장 날지도 모른다. 작게 회전하면서 빠져나갈까?’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숲을 산책하면서 하야카와와 나눈 이야기는 친구들이 도시에서의 팍팍한 삶을 버텨나가는 버팀목이 된다. 그리고 하야카와는 도시로 돌아가고 싶어진 적이 있느냐는 친구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물론 있지. 잡지에서 맛있어 보이는 음식점을 발견했을 때나 밤늦게까지 영업하는 책방이 그리워질 때. 백화점 지하를 하릴없이 돌아다니고 싶어질 때도 있고 주변 사람들이 귀찮은 날도 있어. 그리고 또 애인을 찾고 싶지만, 도시에 있는 너나 마유미도 싱글이니 뭐.”
하야카와가 인생의 무대를 옮기는 데는 그 어떤 거창한 슬로건도 필요하지 않다. 이런 삶을 살아야 한다, 저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자신을 속박하지도 않는다. 하야카와는 그저 물 흘러가는 대로 담담하게,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조용히 살아나가는 사람이다.
두 번째 책인 임혜지의 [고등어를 금하노라]는 내게 또 다른 용기를 보여준다. 독일 뮌헨에서 문화재 실측 조사 일을 하는 임혜지는 독일인 남편, 아들, 딸과 함께 살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가족을 ‘산사태를 일으켜 세상을 바꾸겠다는 소명 의식이나 선각자로서 좋은 일을 주도한다는 공명심에서가 아니라, 내가 내 삶의 주인인데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지 않을 핑계가 없다는 소박한 이유에서 주인이 지녀야 할 자존심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라 소개한다. 그리고 그녀의 당차고도 품위 있는 삶의 방식은 가끔 관성처럼 사는 대로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종종 돌아보게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도 돈 벌기를 포기해서다. 버는 돈의 액수가 아니라 나의 만족도로 일을 평가하기에 내가 항상 즐겁게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어쩌다 돈의 액수로 나의 값어치와 자존심을 매기는 실수를 범할 때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초라한 패자가 된다. 내가 암만 돈을 많이 받아도 내 위에는 승자들이 층층 계단처럼 한없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평가의 기준을 돈에 두는 한 나는 항상 패자로서 우울할 수밖에 없다. 나는 소중한 존재이고 내 노동력 또한 소중하기 때문에 그 평가를 남에게 맡기거나 돈으로 재고 싶지 않다.
임혜지는 그 대가로 학력에 비해 적은 보수와 실력에 비해 낮은 사회적 위상을 떳떳하게 감수한다고 말한다. 그들 가족은 크루아상 하나도 나누어 먹고 좁고 추운 아파트에서 복닥거리며 사는 것은 물론, 물을 아끼기 위해 욕조 목욕 대신 샤워를 한다. 바다가 가깝지 않은 독일에서 고등어를 먹는 것은 사치라며 금하고 자가용 없이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생활비가 많이 들면 들수록 사람은 생존이 부담스럽고 선택의 자유가 줄어들고 물질의 고마움을 모를 것이라 믿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그저 돈을 아끼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그렇게 아낀 돈을 좋은 일에 흔쾌히 기부한다. 그리고 수입이 줄어들 때마다 걱정하고 불안해하기보다는,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의 처지에 마음을 쓰는 품위 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단독주택에 살기로 하면서, 그 결심을 실천에 옮기면서 나와 내 가족의 생활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단독주택까지 와서 인터넷의 그 여자처럼 창문 닫아 걸고 살고 싶지는 않았다. 꿈꾸던 삶의 방식에 한 발짝이라도 다가가고 싶었다. 궁상맞고 추레한 집에 산다고 그 안의 인생까지 궁상맞고 추레할 거라는 편견에 한 방 먹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내가 창문을 열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골목을 지나던 아이들은 우리 집 마당으로 고개를 기웃거리다가는 곧 우리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이웃집 할머니는 너무 많이 끓인 된장국을 나누어 주었고 옆집 아주머니는 마당에서 키운 상추를 뜯어 주었다. 동네에서 나고 자란 할머니에게는 옛날 얘기를 실컷 들었다. 밥을 얻어먹으러 오던 잘 생긴 검은 고양이는 결국 식구가 되었다. 이 모든 게 수도권의 대도시 변두리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내가 계속해서 신도시의 아파트에 살고 있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해본다. 아마 해마다 치솟는 전세금의 압박을 견뎌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인생을 바꾸고 싶지만, 강단이 없어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내 아이들은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을 몸으로 느낄 겨를도 없이 아파트 키드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의 마음도 내 가족들의 마음도 알게 모르게 시들어갔을 것이다. 물론 아파트에 산다고 불행해진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니까, 나름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행복했을까. 모를 일이다.
다만 그것 하나는 안다.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 남들이 사는 모습과 조금 다른 것일지라도, 아주 작은 것부터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어느덧 내가 원하던 삶에 가까워져 있으리라는 것. 하야카와의 말처럼 손끝만 보지 말고 가고 싶은 것을 보면서 저으면, 결국엔 그곳에 다가갈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