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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한국/대한민국 구석구석

제주 산방산·용머리해안 지질트레일 여행

80만 년의 시간을 오롯이 품고 있는 화산섬 제주, 그곳 돌들과 찐한 인연을 맺고 오다.

“질엣 돌도 연분이셔사 찬다”. 이 말은 제주 사투리로 옛날 사람들은 길을 걷다 발부리에 채인 돌멩이까지 연분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말이다. 돌 많다는 제주에서 구경만 하고 오는 관광이 아닌 만나는 돌과 연분을 맺을 수 있는 여행을 나섰다. 제주 돌들의 과거의 흔적을 알아가며 제주 풍경을 즐기는 ‘제주 산방산 지질트레일’을 둘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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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동쪽 성산반도 끝머리에 위치한 성산일출봉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으로 제주도의 대표 지질명소이다

지질트레일이란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증 받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브랜드를 활용해 제주의 문화원형이라 할 수 있는 지질자원과 향토색 가득한 농촌마을의 역사와 문화자원을 접목시켜 만든 걷는 길이다. 산방산, 용머리해안 지질트레일 코스는 지질자원으로서의 가치는 물론 코스마다 펼쳐진 풍광과 사계리, 화순리, 덕수리 마을의 역사와 문화 스토리가 어우러져 있다. 80만 년 지구의 시간을 품은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을중심으로 마을에서 전해지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지질트레일 탐방을 통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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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을 시작으로 덕수리, 화순리, 사계리 등의 마을로 이어지는 A코스와 사근다리 오름, 화순금모래해변, 화순리마을, 곶자왈 등을 거치는 B코스가 있다.

또 다른 제주를 만나는 여행

화산섬 제주는 세계지질공원 인증까지 받을 만큼 그 자체가 지질 교과서라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을 시작으로 덕수리, 화순리, 사계리 등의 마을로 이어지는 지질트레일 코스를 따라가 보았다. 선택한 코스는 A코스다. 시작하기 전, 화산재로 만들어진 해식절벽을 경험할 수 있는 용머리해안을 찾았다. 겹겹이 쌓인 지층이 그 자체로 장관이다. 한라산보다 먼저 생성된 용머리해안은 땅 속에서 올라오던 마그마가 지하수를 만나 격렬하게 반응해 분출된 화산재로 만들어진 화산체다. 분출 도중 지반이 무너져 다른 곳으로 이동하던 중 분출해 일반적인 화산체와 다른 특징을 가진다. 해안가를 걸으면 여러 방향으로 쌓인 화산재와 경사가 다른 지층의 흔적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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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머리는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 지형으로 80만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마치 용이 머리를 쳐들고 바닷속으로 뛰어드는 형상을 닮았다 해서 '용머리'란 이름이 붙여졌다.

용머리해안을 뒤로하고 본격적으로 A코스 출발에 나섰다. 용머리 해안 주차장에서부터 설쿰바당을 지나면 경치가 아름다워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뽑힌 형제해안로가 나온다. 바다풍경에 취해 걷다보니 저 멀리 두 개의 섬이 눈에 들어온다. 다정한 형과 아우가 마주보고 있는 모습 같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형제섬이다. 이 섬은 수성 화산분출에 의해 화산재가 쌓인 후 용암이 분화구를 채워 형성됐다. 신기한 것은 썰물이 되면 섬이 3개에서 8개까지 개수가 늘고 모양이 달라진다고 하니 썰물 때를 맞춰 가보는 것도 좋다.

보는 기쁨, 걷는 즐거움

해안로를 따라 가다보면 사계리해안 체육공원에서부터 좌측 편으로 누런색을 띄는 암석지대가 펼쳐진다. 바로 하모리층이다. 이것은 약 3,500년 경 송악산에서 분출한 화산재가 파도에 깎여 나가 해안가 주변에 쌓인 것으로 해빈모래가 그 위를 덮고 있다. 파도와 바람의 흔적을 말해주듯 불규칙적으로 생긴 웅덩이들을 보면 금방이라도 무엇인가 튀어나올 듯하다. 가뭄에는 웅덩이에 고인 바닷물의 소금 농도가 높아져 짠물 웅덩이가 되는데 예전 제주 사람들은 그 물로 소금을 만들어 사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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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악산에서 분출한 화산재가 파도에 깎여 나가 해안가 주변에 쌓인 하모리층

조금만 더 걸어가니 더 이상 해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나왔다. 바로 제주 사람발자국과 동물발자국 산지. 화산폭발 후 제주에 사람이 살았다니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신기하다. 그만큼 가치 있는 화석지역이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었다. 그래도 궁금하다면 근처 화석발자국 안내소에 들러 전시물로 아쉬움을 대신할 수 있다.

해안로와 헤어지고 나니 사계리 마을길이 나왔다. 차들이 다니는 길이라 조금 위험해 보였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제주 시골 마을의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새 단산이 눈에 들어온다. 지질학적으로 독특한 가치를 지닌 단산은 수성 화산체이면서 응화구다. 작은 오름이지만 수직에 가까운 벼랑과 바위로 이루어져 산세가 험한 편이다. 시간과 체력이 있다면 단산의 정상에서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는 기쁨을 느껴보는 것도 좋다. 위험한 산세라는 말에 단산아래 대정향교와 세미물을 잠시 둘러보고 다음길을 나섰다.

제주의 이야기가 담긴 길 따라 마을 따라

대정향교에서 1km정도 걸으니 코스분기점이 나왔다. 오른쪽 길을 택하면 단축코스로 1시간 정도 일찍 지질트레일을 끝낼 수 있다. 체력이 된다면 산방산 탄산온천을 지나는 정규코스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정규코스를 따라 걸으니 덕수리의 예쁜 돌담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구멍이 송송 뚫린 돌담길을 걸어보는 것이야말로 제주 사람들의 향기를 흠뻑 맡을 수 있는 기회다. 제주에는 도둑이 없다는 말이 있어서인지 낮은 담 덕분에 정겨운 시골집과 담 옆으로 빼곡한 감귤나무들을 보다 보니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 이 길을 걷다보면 농기구를 만드는 불미마당의 흔적도 볼 수 있다. 돌이 많은 제주 땅에 맞는 농기구를 제작했던 곳으로 제주 사람들이 돌과 어울려 살아온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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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무암 돌담을 따라 향토색 가득한 농촌마을이 정겨움을 안겨주는 지질트레일

덕수리를 지나 오솔길을 걷다 보니 산방산에서 부서진 바위가 굴러 떨어져 밭모퉁이에 박힌 큰 돌을 가리키는 베리돌아진밧을 지나쳐 조면암으로 형성된 돌담이 보인다. 이제 도착지점에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아쉽게도 이날은 베리돌아진밧과 조면암 돌담 해설판이 설치가 되지 않아 장소를 찾기가 쉽지는 않았다.

지질트레일, 새로운 여행의 발견

4시간가량의 코스를 마치고 용머리해안 주차장으로 내려가다 보니 저 너머로 산방산이 보인다. 흐린 날씨에 보이는 산의 모습이 영롱해 나도 모르게 발길을 잠깐 멈췄다. 산 속에 방이 있다는 뜻인 산방산은 용암의 높은 점성 때문에 멀리 흐르지 못하고 봉긋 솟은 용암돔이다. 주상절리, 구멍이 뚫린 풍화혈 구조 등 다양한 지질학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산 정상부에는 온난기후 식물이 자라고 암벽에는 희귀한 식물이 자라는 등 제주의 신비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지질트레일은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과 주변 마을의 조화 그리고 곳곳에 숨겨져 있는 제주 돌들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특색 있는 여행을 만들어줬다. 특히 곳곳에 설치된 해설판은 그냥 지나치기 쉬운 제주 돌들과 인연을 맺기에 더없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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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됐을 만큼 섬 전체가 지질명소로 가득하다.